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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힐 권리와 디지털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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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최고관리자

등록일 : 2021.09.07

조회수 :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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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는 잊힐 권리가 있다."


디지털장례 지도사 혹은 디지털장의사가 있다. 디지털장례식도 있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흔적은 인터넷이나 온라인 등 가상의 세계에도 남아 있다. 디지털 장례식은 바로 이런 세상에 대한 작별의식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온라인 상조 회사로 라이프인슈어드닷컴(lifeensured.com)이 있다. 회원 가입비는 3백 달러(34만 원), 회원이 세상을 떠나면 인터넷 정보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유언을 확인한다. 그런 다음, 고인의 흔적을 지우는 의식에 착수한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에서 고인의 글이나 사진을 삭제하는 것은 물론 고인과 관련된 다른 사람의 댓글 등을 찾아내 삭제한다. 서비스 비용은 삭제 범위에 따라 다르겠지만, 통상 우리 돈 50만 원에서 2백만 원 정도다.

 

그렇다면 휴대전화나 노트북, 개인용 컴퓨터에 들어 있는 각종 기록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예를 들어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는 고인의 셀카 사진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또한 고인의 유언이 우선이다. 유언대로 처리하되, 마땅한 유언이 없는 경우 유족의 의사에 따른다. 삭제할 건 삭제하고, 남기고 싶은 기록은 백업파일로 정리해서 유족들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디지털 장례식은 끝난다.

 

삶의 공간이 현실에서 가상으로 상당 부분 이동하고, 종래의 형태가 있거나 만질 수 있는 삶의 기록에서 온라인이나 디지털상의 만질 수 없는 디지털 기록으로 이전함에 따라 죽음을 둘러싼 권리의 종류나 내용 또한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이른바 잊힐 권리’ (right to be forgotten).

 

2010, 스페인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던 마리오 코스테하 곤잘레스(Mario Costeja Gonzalez)10여 년 전 한 매체에 실린 자신에 관한 기사와 기사에 접속할 수 있는 구글의 검색 링크가 사생활을 침해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기사 내용은 곤잘레스의 채무와 경매 등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10여 년 전에는 그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소송을 제기 할 때에는 이미 채무 문제를 말끔히 정리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과거 기사에는 불량 채무자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스페인 개인정보보호원(AFPN)은 구글 측에 해당 링크를 즉각 삭제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구글이 불복했다. 결국, 사건은 유럽사법재판소(ECJ)로 넘어갔다. 20145, 유럽사법재판소는 잊힐 권리를 인정하는 역사적 판결을 선고했다. 곤잘레스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잊힐 권리가 권리로 인정된 이상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찾아야 했다. 생전의 잊힐 권리를 보장해야 함은 물론 사후의 잊힐 권리 또한 당연히 보장받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표현의 자유나 알 권리, 경험에 대한 공유가 역사적 진보의 토대였다는 점을 주장하며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법률가들은 잊힐 권리의 범위와 내용을 정리했다. 그래서 디지털 장례의 범위와 방법에 대한 절차는 유언장의 핵심 내용으로 편입됐다. 디지털 장의사와 장례식은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다. 장례 절차는 일반 장례 절차와 별반 다르지 않다.

 

늘 강조하지만 사적 자치의 원칙에 따라 고인의 의사가 절대적이다. 고인의 의사란 바로 유언이다. 그래서 늘 유언이 먼저다. 유언을 바탕으로 상담이 시작되고, 법적으로 위임 절차가 진행된다. 유언장 혹은 유가족과의 상담 내용에 따라 검색을 시작해 삭제할 건 삭제하고 남길 건 남긴다. 이미 관련 검색 프로그램은 충분히 개발되어 있다. 다만, 생전 유언장 작성 문화가 보편화되지 않은 우리의 현실이 디지털 장례식을 힘들게 만드는 걸림돌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20164월 공표한 인터넷 자기 게시물 접근 배제 요청권 가이드라인이 근거다. 아직 독자적인 입법이나 법률로서의 근거는 마련되지 않은 실정이다.

 

망각 없이 행복 없다.”

기억의 중요성만큼이나 망각 또한 필요하다. 잊힐 것은 잊혀야 한다. 어디까지나 결정의 주체는 본인이다.

 

본 글은 <최재천 변호사의 상속 설계>(최재천)에서 발췌하여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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